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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용
만주의 한인촌에서 서울까지 처음 뿌려진 복음의 씨
1882년 한국교회 최초의 한글성경인『누가복음』을 '조판(組版)'하면서 복음에 눈을 뜨고 세례까지 받은 김청송은 그 얼마 후 서간도의 한인촌으로 다니면서 자신의 손으로 '식자(植字)한'『누가복음』을 나누어주고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사명을 맡게 되었다. 처음 집을 떠날 때는 분명히 약장사였는데, 돌아갈 때는 한국교회 최초의 권서로 변모한 것이다. 김청송은 자신의 집이 있는 집안현(輯安縣) 이양자(裡楊.....
한국 개신교 최초의 한글성경
로스와 한국인 동료들에 의해 번역된 한글성경은 이미 1883년에서 1886년 사이에 수 만권 이상이 권서들을 통해서 한국인들 사이에 유통되었다. 내한 선교사들 중 가장 오래 한글성경번역 일을 하였던 레이놀즈에 의하면 북한지역에서의 놀라운 복음의 진보는 바로 이들에 의해 번역된 하나님의 말씀이 한국인의 심령 속에 심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을 만나면서 로스는 한국어 성경을 번역해야겠다는 .....
한국개신교의 첫 열매들
1884년은 최초의 상주(常住)선교사인 알렌이 한국에 온 해로 한국 개신교의 원년(元年)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같은 해 만주의 한인촌(韓人村) (주1) 에서는 '75명의 영혼이 세례를 받고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미 5년 전인 1879년 만주 영구(營口)에서 네 사람이 시차를 두고 한국 개신교 최초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보다 5년 전인 1874년 10월 만주의 .....
급변하는 정치상황과 선교사들 2 - 헐버트를 중심으로
선교사들이 친일(親日)로 경도한 것은 '노회한(shrewd)' 정치가 초대통감 이토(伊藤博文)의 영향이 컸다. 이토는 각종 특혜와 물량공세로 선교사들의 환심을 사는 것은 물론, 지도급 선교사들과 친분을 맺어 일제의 조선지배 논리를 설복시켰다. 여기에는 영어에 능숙하고 서구적인 신사로서 교양과 품위를 풍기는 이토에 대한 미국인들의 호감이 크게 작용하였다.(주1) 이토는 감리교 감독 해리스(M. C. Ha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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