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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헤론이 최초로 묻히면서 외국인 묘지(외인묘지)가 시작.
외아문 (조선국외무부)은 1883년 11월 조인된 조영수호통상조약 4조 5항에 의거, 사유지였던 이곳을 매입하여 외국인묘역으로 조성. (약 280 평)
* 조영수호조약 4조 5항: “조선국당국 (朝鮮國當國)은 각 통상지역에서 외국인 묘지로서 무상으로 적당한 지면을 설정하되 그 묘지는 지대(地代) 지세(地稅) 혹은 기타 수수로 지불을 면제한다. 그리고 그 묘지의 경영은 상기 조계공사에 위임한다.” (불평등조약)
* 1882년에 조인된 조미통상조약에는 이 조항이 없었으나 ‘최혜국조관(最惠國條款)’ 이 포함되어 있음을 근거로 미국공사 허드(Heard)가 조선당국에 묘지를 요구.
영,러,미,독,불 5개 공사 공동명의로 조선정부에 양화진외국인묘지 주의 담장 설치를 요청. ‘묘지위원회’에서 ‘외국인묘지규칙’ 제정 (내용은 소실)
1차 외국인 묘역 확장. (대한제국이 경비 부담)
2차 양화진외인묘지 확장 및 도로 보수. 묘지위원회 위원장 알렌. (주한미국공사관 특명전권공사)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실시 후 토지대장에 ‘경성구미인묘지회 (Kyung Sung European American Cemetery Committee)’ 로 등기. (당시 등기자는 경성부 서부 서대문 밖 평동 독일총영사관)
태평양 전쟁으로 모든 외국인 선교사 강제 출국. (법적 명의자가 없는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