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선교사처음이야기 > 선교사소개 > J. P. 캠벨   
 
 
캠벨 선교사는 1897년 44세 때 한국에 들어와서 ‘배화학당’을 세우고 여성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27세 되던 해에 남편과 사별한 캠벨은 곧 두 자녀도 병으로 잃었습니다.
이러한 시련을 겪으면서 그녀는 일생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시카고의 간호학교를 졸업합니다.
졸업 후 33세 되던 해 중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상해와 소주에서 10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캠벨은 1897년 10월에 남감리회의 첫 번째 여성선교사로서 중국인 양녀와 함께 한국에 들어옵니다. 1898년 10월 2일, 그녀는 지금의 종로구 내자동에 여성들 대상의 학당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여성을 아름답게 기르고, 꽃 피워내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뜻으로 ‘배화학당’으로 이름 지었습니다.

배화학당의 기도실에서는 정기적인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캠벨은 미국인 루이스 워커의 기부금으로 예배당을 신축하였는데, 정기예배는 이곳에서 지속되었습니다.
정기예배는 시간이 흐르면서 한 모임은 종침교 근처에서 종교교회로, 또 다른 모임은 자하교 근처에서 자교교회로 발전하였습니다.
한국여성들을 복음 안에서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하던 캠벨은 1918년 65세 때 안식년을 얻어 미국으로 돌아가다가 그만 신병을 얻게 됩니다.

안식년이 끝난 후, 그녀는 신병과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시간의 뱃길을 통해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1920년 11월 12일 67세의 나이로 소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