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선교사처음이야기 > 선교사소개 > D. A. 벙커   
 
 
뉴욕 유니온 신학교의 졸업반이던 벙커는,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1886년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육영공원이 양반자제들의 학업 태만과 재정지원의 중단으로 문을 닫자 벙커는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으로 옮겨 갑니다.
그는 배재에서 종래의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방법 대신 토론 위주의 공개적인 방법을 도입하였고, 물리학, 화학, 수학, 정치학 등 새로운 교과도 채택하였습니다. 또한 아펜젤러가 순직한 후에는 배재학당의 3대 교장으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벙커는 한국에 들어온 이듬해 민비의 시의였던 의료선교사 애니 엘러스와 결혼하였습니다.

 
당시 배재의 학생들은 독립협회의 서재필, 윤치호의 강연을 통해서 서구의 정치사상과 민족의식에 눈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립협회가 강제로 해산당하고 중심인물들이 수감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때 벙커가 아끼던 제자 이승만도 함께 한성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벙커는 동료 선교사들과 힘을 모아서 한성감옥 수감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였고, 결국 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져서 그들은 자유롭게 차입도 하고 전도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통해 이상재, 이원긍, 안국선 등 12명의 고관 출신 양반과 선비들이 최초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벙커는 배재학당장을 사임한 후 조용히 전도와 교육 사업을 합니다가 1926년 73세 고령의 나이로 은퇴하였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소천 하였지만 ‘나의 유골이나마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마지막 유언에 따라 그의 부인이 유골을 안고 와서 양화진에 안장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