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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놀즈는 남장로회 개척 선교사이면서 한글성경번역에 크게 공헌하였던 선교사입니다.
그는 햄펀시드니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였는데, 특별히 언어에 재능이 많아서 신학교에서 성서원어와 라틴어를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레이놀즈가 한국에 선교사로 오게 된 것은 언더우드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언더우드는 안식년 기간에 미국에서 열린 해외선교 신학교연맹 대회에서 한국선교에 대해서 연설하였는데, 마침 그 곳에 있던 레이놀즈와 몇 사람의 신학생들은 크게 감동을 받아서 한국선교를 자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소속된 남장로회 선교부와 교회 어디에서도 한국선교에 관심이 없어서 선교후원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언더우드의 친형과 언더우드가 남장로회에 이들의 선교비 명목으로 3천 달러를 헌금해서 이들은 마침내 1892년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레이놀즈 부부를 비롯한 7인의 남장로회 개척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이듬해 열린 장로회선교사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남장로회는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주로 선교활동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레이놀즈는 전라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레이놀즈는 1895년 성경번역위원회 남장로회 대표로 선임되면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번역은 외국인선교사와 한국어 선생의 공동작업이라고 할 만큼 한국어 선생의 역할은 지대할 수 밖에 없었는데, 레이놀즈가 한글성경번역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박학다식한 한국어 선생 김필수의 공이 컸습니다.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정도로 성경번역의 과정은 길고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끈기있게 일을 진행하던 레이놀즈는 마침내 그 열매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 권씩 개인역이나 수정역으로 나오던 신약 전체를 묶어서 1900년 단권 신약성경을 출판한 것입니다. 출판된 성경에서 여러 가지 오류가 발견되자 레이놀즈와 언더우드, 게일은 아예 성경번역에만 매달립니다.
이들은 1902년 부터 1906년까지 무려 555회의 토론과 수정 과정을 거친 후에 최초의 공인역본 신약전서를 출판하였습니다.
히브리어에 정통하였던 레이놀즈는 1910년 구역성경의 출판에서도 주역의 역할을 하여서,
신·구약 성경 한 권이 온전히 출판되는 일에 쓰임 받았습니다.
레이놀즈는 1917년부터 20년 동안 평양장로회신학교 어학교수와 <신학지남> 편집인으로도 일하였습니다.
신학지남은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에서 간행한 기독교신학연구지로,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교수들의 신학연구논문을 출판하기 위하여 만든 책이며, 장로교회의 신학이해와 신앙영위를 제시해주는 동시에 목사들의 신학 연구를 북돋고 뛰어난 목회자, 설교자가 되도록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이 연구지는 현재까지도 장로회 신학대학측의 <교회와 신학>, 총신대학측의 <신학지남>으로 계속 간행되고 있습니다.

양화진에는 채 한 살이 되기 전 한국에서 죽은 맏아들과 미국에서 76세로 죽은 둘째 아들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