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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공회는 코르프에 의해서 1890년 시작되었습니다. 성공회 선교사들은 한국어와 문화를 익히면서 몇 해 동안 선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이들 성공회 선교사들은 거의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교 출신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1896년 성탄절 전야에 비로소 몇 사람에게 성세를 베풀었고 점차 교회로서 형태를 갖추어갔습니다.

이 무렵 터너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옥스포드대학을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을 받은 지 8년 만에 한국에 부임하였습니다.
터너는 1904년 초대 코르프를 이어 제 2대 주교가 된 후 주로 인천과 강화도에 집중되어 있던 성공회의 선교 영역을 수원과 충북 진천까지 확대하였습니다.

터너는 YMCA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는데, 1907년에서 1910년 한일합방에 이르는 어려운 시기에 YMCA 회장을 맡으면서 이상재, 윤치호 등의 항일운동을 뒷받침하였습니다.
터너는 미국 백화점왕 워너메이커의 후원으로 YMCA의 새 건물을 신축하는 일도 추진하였으며,
상동교회 출신의 전덕기와 YMCA의 이상재, 이승만, 김규식 등을 규합하여서 기독교 연합 세력을 만드는 일에도 힘썼습니다.

 
터너는 신자들에게 다음의 신앙 원리를 가르치고 직접 실천하였습니다.

첫째, 현실 문제를 도외시한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둘째, 성공회 신자들은 친일 단체인 일진회에 절대로 동참해서는 안 되고 불의와 싸우는 항일운동에 참여하여야 한다.
셋째, 기복적인 신앙을 추구해서는 안 되고 순수한 동기로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는 외국인 선교사가 교회를 직접 경영하면서 모든 경비를 전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므로 한국교인들에 의한 자치와 자립을 추구하였습니다.
이런 뜻에 따라 교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세워진 교회로는 강화 온수리교회와 진천교회 등이 있습니다. 강화 온수리교회 뜰 안에는 그의 덕을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