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ary Story
Missionary Story
핼리팩스는 1883년 조선정부가 설립한 최초의 영어학교인 동문학 영어교사로 처음 한국에 왔다. 당시 동문학은 조선정부 외교고문이던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학교였다. 이때 묄렌드르프가 일본에 거주하는 미국인을 원어민 교사로 채용했는데 그가 바로 핼리팩스였다. 그는 영국인이지만, 일본에서 전신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수년 간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선원으로 일했고, 이후 다시 일본에서 영어교사로 일했기 때문에 미국인으로 오인되었다.
핼리팩스는 1842년 영국 웨스트배리(Westbury)에서 태어나 세인트메리대학(St. Merry College)을 졸업했다. 그는 전기기술자로 동인도회사에 취직하여 인도에서 거주하다가 1871년, 전신선 가설 기술자로 일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일본에서 그는 주로 영어교사로 일했으며, 미국을 오가는 선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핼리팩스가 조선에 오게 된 것은 조선 전신사업에 함영할 길을 찾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당시 조선상황이 전신사업을 할 만큼 성숙되지 않아 묄렌드르프의 추천으로 최초의 관립학교인 동문학 영어교사가 되었다.
핼리팩스는 1886년 동문학이 폐교(대신 육영공원 설립)되자 애초 내한 이유였던 전보총국 설립에 동참하고 남로전선을 가설에 참여했다. 이 사업의 공로로 핼리팩스는 조선정부로부터 정3품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았다. 이후 핼리팩스는 일본으로 갔다가 1895년 다시 조선에 들어와 육영공원의 후신인 한성영어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내한 초창기 핼리팩스는 교사로서의 자질을 의심받기도 했으나 말년에는 학교와 외국인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핼리팩스는 1908년 한성영어학교를 퇴직한 후 대한제국 훈4등에 서임되고 태극장 훈장을 받았으며, 그해 11월 별세하여 양화진에 묻혔다. 양화진에는 그와 일본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딸(Hallifax, Alice 1897)도 함께 묻혀 있다.